아이보리 조 헌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이보리 조 헌터는 텍사스 출신의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였다. 그는 본명으로 활동했으며, 13세에 피아니스트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1940년대 초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1945년에는 자신의 레이블에서 발표한 〈Blues at Sunrise〉로 R&B 차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50년에는 〈I Almost Lost My Mind〉가 R&B 차트 1위를 차지했고, 팻 분이 리메이크하여 팝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1960년대 말에는 컨트리 음악으로 전향하여 활동했으며, 1974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미국의 블루스 피아노 연주자 - 레이 만자렉
폴란드계 미국인 음악가, 영화 감독, 작가인 레이 만자렉은 1965년 짐 모리슨과 함께 결성한 록 밴드 도어즈의 키보디스트로서, 독특한 오르간 연주와 펜더 로즈 베이스 연주로 밴드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미국의 블루스 피아노 연주자 - 조니 "기타" 왓슨
조니 "기타" 왓슨은 미국의 블루스, 펑크, 소울 음악가로서, 기타 연주와 보컬, 작곡 능력을 갖추고 펑크 블루스 스타일을 개척하여 후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Gangster of Love" 등의 대표곡과 1994년 그래미상 후보 앨범 《Bow Wow》를 통해 202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미국의 블루스 가수 - 미시시피 존 허트
미시시피 존 허트는 1893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1928년 녹음 후 상업적 실패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1963년 재발견되어 활동하며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미국의 블루스 가수 - 재니스 조플린
재니스 조플린은 허스키한 보컬과 파워풀한 무대 매너로 196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여성 로커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의 리드 보컬로 활동하며 솔로 활동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27세의 나이로 사망 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미국의 컨트리 가수 - 리 앤 워맥
리 앤 워맥은 1997년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컨트리 음악계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으며, 2000년 앨범 《I Hope You Dance》로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찬사를 받았고, 이후 어메리카나 음악으로 전환하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이다. - 미국의 컨트리 가수 - 스키터 데이비스
메리 프랜시스 페닉이라는 본명을 가진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 스키터 데이비스는 데이비스 자매 멤버로 활동 후 솔로로 전향, 〈세상의 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컨트리 음악을 기반으로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였다.
아이보리 조 헌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별칭 | 부기의 남작 가장 행복한 남자 |
출생일 | 1914년 10월 10일 |
출생지 | 텍사스주 커비빌 |
사망일 | 1974년 11월 8일 |
사망지 | 테네시주 멤피스 |
악기 | 피아노, 보컬 |
직업 | 싱어송라이터 |
활동 연도 | 1933년 - 1974년 |
장르 | 리듬 앤 블루스 블루스 부기우기 컨트리 음악 |
2. 초기 생애
아이보리 조 헌터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 데이브 헌터는 기타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복음성가 가수였다. 헌터는 타워 오브 파워의 초대 보컬리스트인 릭 스티븐스의 삼촌이었다.[5] 그는 13세에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다.[3] 193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10대에 앨런 로맥스와 의회 도서관을 위해 첫 녹음을 했다.[3][4]
2. 1. 출생과 성장 배경
텍사스주 커비빌에서 태어났으며, 아이보리 조는 그의 본명으로 별명이나 예명이 아니었다.[17]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연주하는 아버지 데이브 헌터와 복음성가 가수 어머니를 따라 음악적 소질을 길렀다. 13살 때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재능이 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33년 청소년 시절 앨런 로맥스와 의회도서관을 도와 첫 녹음을 진행했다.[18]2. 2. 초기 음악 활동
텍사스 커비빌에서 태어났다. 아이보리 조는 그의 본명이며, 별명이나 예명이 아니었다.[17]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연주하는 아버지 데이브 헌터와 복음성가 가수 어머니를 따라 음악적 소질을 길렀다. 13살 때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재능이 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33년 청소년 시절 앨런 로맥스와 의회도서관을 도와 첫 녹음을 진행했다.[18]1940년대 초반부터 텍사스주 보몬트의 KFDM에서 자신만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프로그램 매니저 자리까지 올라섰다. 194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1940년대 중엽 조니 무어의 스리 블레이저스(Johnny Moore's Three Blazers)에 합류했다.[17] 이들과 함께 자신의 첫 자작곡 〈Blues at Sunrise〉를 자신의 레이블인 아이보리 레코드에서 발표하여 1945년 R&B 차트에서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다.[18][19]
1940년대 말엽 퍼시픽 레코드를 창립했다.[17] 1947년 포 스타 레코드와 킹 레코드에서 취입을 진행, 2년 후 〈I Quit My Pretty Mama〉, 〈Guess Who〉로 더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이 곡들의 배킹은 듀크 엘링턴 밴드 멤버가 맡아주었다.[18][20]
3. 음악 경력
아이보리 조 헌터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적 소질을 길렀다. 13살에 이미 피아니스트로 재능을 인정받았고, 1933년 앨런 로맥스와 의회도서관을 도와 첫 녹음을 진행했다.[18] 그는 매우 많은 곡을 썼는데, 한 자료에서는 그의 자작곡 수를 7,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3. 1. 라디오 방송과 데뷔
1940년대 초반부터 텍사스주 보몬트의 KFDM에서 자신만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으며, 결국 프로그램 매니저 자리까지 올라섰다.[17] 194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1940년대 중반 조니 무어의 스리 블레이저스에 합류했다.[17] 그는 자신의 레이블인 아이보리 레코드에서 이들과 함께 자신의 첫 자작곡 〈Blues at Sunrise〉를 발표했는데, 1945년 R&B 차트에서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다.[18][19]3. 2. 1940년대: 밴드 활동과 레이블 설립
1940년대 초, 헌터는 텍사스주 보몬트의 KFDM에서 자신의 라디오 쇼를 진행했고, 결국 프로그램 매니저가 되었다. 194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1940년대 중반 조니 무어의 쓰리 블레이저스에 합류했다.[17] 그는 자신의 레이블인 아이보리 레코드에서 쓰리 블레이저스와 함께 첫 번째 곡인 〈Blues at Sunrise〉를 작곡하고 녹음했는데, 이 곡은 1945년 R&B 차트에서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다.[18][19]1940년대 후반에 헌터는 퍼시픽 레코드를 설립했다.[17] 1947년 포 스타 레코드와 킹 레코드에서 녹음했다. 2년 후, 듀크 엘링턴 밴드 멤버들의 지원을 받아 〈I Quit My Pretty Mama〉와 〈Guess Who〉로 R&B 히트곡을 추가로 발표했다.[18][20]
3. 3. 1950년대: 전성기
MGM와 계약을 맺고 취입한 〈I Almost Lost My Mind〉는[17] 1950년 R&B 차트에서 정상을 달성하는 대히트였다. 이것은 후일 팻 분이 다시 취입하여 이번에는 팝으로서 1위 히트를 기록한다.[18] 같은 해 〈I Need You So〉가 R&B 차트에서 2위에 올라 또 다른 히트를 성사시켰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전달력으로써 헌터는 R&B계에서 유명해졌으며 컨트리계에서도 그의 평판은 높아졌다. 1951년 4월 《유 애스크드 포 잇》을 통해 네트워크 TV 데뷔를 하였다. 배킹 밴드를 대동하고 광범한 순연을 돌았으며 우람한 체구와 번쩍번쩍한 의상, 지랄버릇으로 그 이름을 날렸다.[21]1954년 무렵에는 100곡을 넘게 녹음한 상태로 애틀랜틱 레코드로 전속한다. 이때 그 최초의 크로스오버 팝 차트 히트곡인 〈Since I Met You Baby〉(1956)를 만들어낸다. 그의 유일한 톱 40 팝 송으로 팝 차트에서 12위까지 올랐다.[22]
1957년 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청에 응하여 그레이스랜드를 방문했다. 둘은 왼종일을 함께 보내면서 〈I Almost Lost My Mind〉를 부르거나 또 다른 곡들을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헌터는 이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는 무척이나 영적인 성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절이란 예절은 모두 갖추어 저를 대접해주더군요. 최고가 있다면 그가 아닐까 싶습니다."[23] 엘비스는 그렇게 아이보리의 곡 여러 개―〈I Need You So〉, 〈My Wish Came True〉, 〈Ain't That Lovin' You, Baby〉를 녹음했으며[18] 이후 1971년 5월에는 〈I Will Be True〉, 〈It's Still Here〉을 녹음했다.
3. 4. 엘비스 프레슬리와의 인연
1957년 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청으로 그레이스랜드를 방문했다.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I Almost Lost My Mind〉를 비롯한 여러 곡을 함께 불렀다. 헌터는 프레슬리에 대해 "그는 매우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저에게 모든 예의를 보여주었고, 그는 최고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회고했다.[23]엘비스는 헌터의 곡 〈I Need You So〉, 〈My Wish Came True〉, 〈Ain't That Lovin' You, Baby〉 등을 녹음했으며,[18] 1971년 5월에는 〈I Will Be True〉, 〈It's Still Here〉를 녹음했다.
3. 5. 1960년대-1970년대: 컨트리 음악 전향과 사망
1960년대 말, 헌터는 컨트리 가수로 복귀하여 그랜드 올 오프리에 정규 출연했고, 《I've Always Been Country》라는 앨범도 발표했다.[24]1969년 컨트리 가수 소니 제임스가 〈Since I Met You Baby〉를 컨트리 버전으로 불러 컨트리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헌터는 새 앨범 《The Return of Ivory Joe Hunter》를 취입하고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앨범은 멤피스에서 이삭 헤이즈, 진 "보우레그" 밀러, 찰스 찰머스 등이 참여한 가운데 녹음되었다.[18] 제리 리 루이스 역시 1969년에 이 곡을 커버했다.
1974년, 헌터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폐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17] 그의 유해는 스프링 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25]
4. 대표곡
별도 언급이 없는 한 동일 앨범 수록곡
R&B[14]
b/w "You Taught Me to Love (But Not to Forget)"
b/w "Reconversion Blues" (논앨범 트랙)
b/w "Don't Leave Me"
b/w "Gazing"
b/w "Heavy Hearted Blues" (논앨범 트랙)
b/w "I Love My Man"
b/w "I Don't Want No Cheese No More" (논앨범 트랙)
b/w "High Cost, Low Pay Blues" (논앨범 트랙)
b/w "JamminDown in Town" (from 아이보리 조 헌터'' (Sound Record Co.))
b/w "Don't Be No Fool-Fool"
b/w "Siesta with Sonny" (논앨범 트랙)
b/w "Are You Hep?" (논앨범 트랙)
b/w "The Code Song (I Love You)" (from Sixteen of His Greatest Hits)
b/w "I Love My Man" (논앨범 트랙)
b/w "No Money, No Luck Blues"
b/w "That's the Gal for Me" (논앨범 트랙)
b/w "I Love My Man"
b/w "All States Boogie" (논앨범 트랙)
b/w "Please Come Back Home Baby"
b/w "If I Give You My Love" (논앨범 트랙)
b/w "It's You Just You"
B-side by Cecil Gant Trio: "Coming Round the Mountain"
b/w "Why Fool Yourself" (from I Need You So)
b/w "Gimme a Pound o' Ground Round"
b/w "Leave Her Alone" (논앨범 트랙)
b/w "I Got Your Water On" (논앨범 트랙)
B-side by Nick Esposito, "Empty Room Blues"
b/w "I Have No Reason to Complain"
b/w "Living a Lie"
b/w "Dont You Believe Her"
b/w "Too Late"
b/w "You Thrill Me" (from I Need You So)
b/w "Send Me, Pretty Mama" (논앨범 트랙)
b/w "I Ain't Got No Gal No More" (논앨범 트랙)
b/w "Big Wig" (from Ivory Joe Hunter, Sound Record Co.)
b/w "Time Has Passed"
b/w "You Lied" (논앨범 트랙)
b/w "Wrong Woman Blues" (from I Need You So'')
b/w "I Shouldn't Love You"
b/w "U Name It" (논앨범 트랙)
b/w "I Get That Lonesome Feeling"
b/w "I Got to Learn to Do the Mambo"
b/w "I Want Somebody"
b/w "I Need You by My Side"
b/w "You Mean Everything to Me"
b/w "You Can't Stop This Rocking and Rolling"
b/w "Everytime I Hear That Song"
b/w "All About the Blues"
b/w "Baby Baby Count on Me"
b/w "I'm So Glad I Found You"
b/w "You Flip Me Baby"
b/w "Stolen Moments"
b/w "A Cottage for Sale"
b/w "Now I Don't Worry No More"
b/w "I Love You So Much"
b/w "Did You Mean It"
b/w "Don't Fall in Love With Me"
b/w "It Must Be Love"
b/w "You Satisfy Me Baby"
b/w "I'm Hooked"
b/w "May the Best Man Win"
b/w "Great Big Heart Full of Love"
b/w "Somebody's Stealing My Love"
b/w "Congratulations"
b/w "My Lovers Prayer"
b/w "This Kind of Woman"
b/w "I've Been Searching"
b/w "I Can Make You Happy"
b/w "Ive Asked You for the Last Time"
b/w "Whats the Matter Baby"
b/w "From the First Time We Met"
b/w "I'll Give You All Night to Stop"
b/w "Until the Day I Die"
b/w "Straighten Up Baby"
b/w "We All Like That Groovy Feeling"